지난달에 오래된 친구랑 술을 한잔 하는데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 요즘 뉴스를 보면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침에는 미국이 반도체 수출을 막았다는 뉴스가 뜨고 점심에는 건설사 하나가 또 쓰러졌다는 뉴스가 뜨고 저녁에는 AI가 이제 변호사 일도 한다는 뉴스가 뜬다. 하나씩 보면 다 다른 얘기 같은데 묘하게 피로감이 같다는 거다. 다 같이 어딘가 꽉 막혀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느낌.
그 말이 꽤 정확했다. 따로 보면 그냥 하루치 사건인데 3개월치를 겹쳐놓고 보면 이상하게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정치도, 경제도, 기술도, 사회도 각자 따로 고장 난 게 아니라 같은 축이 비틀리면서 같이 고장 나고 있다. 그래서 하나만 고치면 될 것 같은데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세 개가 같이 흔들린다. 지금이 딱 그런 구간이다. 그래서 뉴스를 나열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밑에서 돌아가는 기계를 같이 봐야 한다.
1. 국제 정치, 미국 대 중국이라는 말로는 이제 설명이 안 된다
예전 냉전은 차라리 깔끔했다. 두 개의 진영이 있고 규칙도 비교적 명확했다. 지금은 훨씬 어지럽다. 진영 안에서도 서로 견제하고 진영 밖에서는 각자 살 길을 찾느라 바쁘다. 그래서 신냉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게으른 설명이 됐다.
미중 싸움을 보면 성격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에는 관세였다. 누가 더 세게 때리나를 보는 항구 싸움. 그 다음에는 디커플링 얘기가 나왔다. 아예 공급망을 뜯어서 따로 가자는 주장.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그보다 한 단계 더 미묘한 디리스킹이다. 완전히 헤어지자는 게 아니라 위험한 부분만 정밀하게 도려내겠다는 발상이다. 미국 입장에서 위험한 부분이란 게 뭔가. 반도체, 특히 AI 가속기, 그걸 만드는 장비, 양자 컴퓨팅, 첨단 바이오 장비 같은 것들이다. 이 네 개 고리에서만큼은 중국이 독자적으로 숨 쉬지 못하게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나온 게 미국의 반도체법이고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도쿄일렉트론을 끌어들인 장비 수출 통제고 동맹끼리 공장을 같이 짓자는 프렌드쇼어링이다.
문제는 이 압박이 중국을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더 빨리 뛰게 만든다는 데 있다. 밖에서 문을 잠그니까 안에서 어떻게든 열쇠를 만들게 되는 셈이다. 화웨이의 최신 칩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능이 엔비디아 최신 칩보다 2년 뒤처지더라도 일단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면 생태계가 생긴다. 성능은 부족해도 그 생태계 안에서 먹고사는 기업들이 생기고 그 기업들이 다시 다음 세대를 만든다. 미국은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고 중국은 생태계를 벌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이겼다고 믿는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끼인 한국 같은 나라 입장에서는 지난 20년간 써먹던 공식이 통하지 않게 된다. 안보는 미국에 기대고 시장은 중국에서 벌던 그 절묘한 줄타기가 이제는 줄 자체가 너무 얇아졌다. 미국은 이제 모호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같이 만들자면서 선택을 요구하고 중국은 그 선택에 대한 청구서를 들이미는 식이다. 외교적 수사로 버틸 공간이 거의 없다. 결국 남는 해법은 좀 냉정하다. 대체 불가능해지는 것. 너희가 우리 없이 이 제품을 끝까지 만들 수 있냐는 질문에 당장은 아니라는 답이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나 배터리, 조선이나 원전 시공처럼 단기간에 복제하기 어려운 지점을 꽉 쥐고 있는 것 외에는 테이블에 올릴 카드가 별로 없다.
여기에 소위 글로벌 사우스라는 변수까지 끼면 판은 더 복잡해진다. 인도나 사우디,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고르지 않는다. 그때그때 이익이 되는 쪽에 붙는다. 오늘은 미국이랑 손잡고 내일은 중국이랑 손잡는다. 이러다 보니 예전처럼 미국이 가자고 하면 다 같이 가는 구조가 아니다. 각자 자기 살 길 찾는 혼돈의 정점이다.
지역 분쟁도 이제는 돌발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모두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의 문제로 굳어졌다. 젤렌스키가 계속 러시아 본토 타격을 요구하는 것도 단순한 확전 욕심으로 보면 안 된다. 방어만으로는 전황을 바꿀 수 없다는 걸 현장에서 학습한 결과에 가깝다. 이 전쟁은 영토 몇 킬로미터를 더 갖는 싸움이 아니라 NATO의 억제력이라는 개념과 러시아의 지구력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맞붙는 실험장이 됐다. 중동도 비슷하다. 국지전이 터질 때마다 에너지 가격과 해상 운임, 식량 가격이 같이 흔들린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제 유가와 운송료를 일회성 변수로 예산에 넣는 게 아니라 기본값으로 깔고 간다. 평화가 예외이고 분쟁이 일상인 세상에서는 그렇게 계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일상의 비용은 결국 우리 모두의 장바구니와 전기 요금에 찍힌다.
2. 경제,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데 장부 속이 곪는 구간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다. 미국 증시는 AI 기대감으로 신고가를 쓰고 실업률도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서 곪는 냄새가 난다. 겉으로 웃고 속으로 우는 경제다.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고리는 역시 부동산 PF다. 구조 자체가 연쇄적으로 엮여 있어서다. 땅을 가진 시행사가 있고 건물을 짓는 시공사가 있고 돈을 빌려주는 증권사와 신탁사가 있다. 처음에는 브릿지론이라는 임시 다리를 놓고 본PF로 넘어가면서 제대로 된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그 다리 위에서 멈춰 선 사업장이 한두 곳이 아니다. 분양이 안 되니까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고 브릿지론 이자만 쌓인다. 정부는 연착륙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시간을 벌어주고 있지만 부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뒤로 밀릴 뿐이다. 이게 무서운 이유는 전염성 때문이다. 중소 건설사 하나가 무너지면 그 보증을 섰던 증권사와 캐피탈사의 유동성이 막히고 그 여파가 다시 다른 현장의 공사를 멈추게 만든다. 신용이라는 혈관이 한 곳에서 막히면 몸 전체가 저려오는 것과 같다. 둔촌주공 같은 대형 사업장 하나가 흔들릴 때마다 금융권 전체가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제 중요한 건 터지느냐 안 터지느냐가 아니라 터지더라도 시스템 전체로 번지지 않게 어떻게 끊어내느냐의 문제다. 정부가 시간을 끄는 것도 결국 그 절단면을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 위에는 연준의 고민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금리를 올렸는데 이제는 반대편에서 경기 침체가 고개를 든다.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다시 튀어 오를까 봐 걱정이고 버티자니 가계와 기업이 먼저 쓰러질까 봐 걱정이다. 피벗이라는 단어가 1년 넘게 시장을 흔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제, 얼마나 빨리 내릴 것인가. 0.25%포인트 하나에 전 세계 돈의 방향이 바뀐다. 미국이 내리면 신흥국 환율은 좀 숨을 돌리고 동결하면 부채가 많은 기업들은 밤잠을 설치게 된다. 우리 같은 나라에게는 남의 나라 통화정책이 곧 우리 집 가계부가 된다. 특히 가계부채가 높은 한국 같은 경우에는 미국의 금리 결정 하나가 영끌로 집을 산 사람들의 이자 부담으로 직결된다.
여기에 AI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겹친다. 지금 증시를 밀어 올리는 건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다. 기업들은 AI 때문에 생산성이 몇 배가 될 거라고 말하면서 조 단위 투자를 한다. 엔비디아 GPU를 수만 장씩 사고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그런데 재무제표를 까보면 그 몇 배가 아직 영업이익으로 찍히고 있지는 않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J커브 구간이다. 기술은 먼저 들어오고 생산성은 한참 뒤에 따라온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도 그랬다. 한참 동안은 뭐가 달라졌냐는 얘기를 듣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게 바뀌었다. 이 간극이 메워지는 순간 우리는 닷컴 버블을 넘어서는 진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화이트칼라의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니까. 반대로 이 간극이 계속 메워지지 않으면 시장은 참을성이 없다. 기대가 먼저 올라간 만큼 실망도 크게 온다. 지금 시장은 그 증명을 기다리면서 버티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 실적 발표 때마다 애널리스트들이 집요하게 묻는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AI로 돈을 벌었냐는 것이다.
3. 기술, 챗봇은 끝났고 이제는 손발이 달린 에이전트가 왔다
2023년이 질문에 답하는 챗봇의 해였다면 2026년은 목표를 주면 스스로 일하는 에이전트의 해다. 흐름이 꽤 명확하다. 텍스트만 읽던 모델이 이미지와 영상, 오디오를 동시에 이해하는 모델이 됐고 이제는 거기에 손발이 달렸다.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툴을 골라 쓰고 결과를 검증해서 보고까지 하는 식이다. 생각하고 행동하고 관찰하는 루프를 스스로 돌리는 것이다.
이건 편의성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업무 방식 자체의 교체다. 예를 들어 경쟁사 분석해서 보고서 써줘라는 지시 하나를 생각해보자. 예전에는 주니어 3명이 3일을 붙어서 했을 일인데 이제는 에이전트 하나가 30분 만에 1차 초안을 뽑아온다. 웹을 검색해서 자료를 모으고 표를 만들고 그래프를 그리고 요약해서 슬라이드까지 만들어준다. 사람 역할은 직접 만드는 사람에서 검수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 이동한다. 블루칼라의 산업혁명보다 화이트칼라에게는 훨씬 더 직접적인 변화다. 그래서 요즘 회사에서 제일 많이 들리는 말이 야근이 아니라 검수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끝에는 전기가 있다. AI의 탐욕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모델 하나를 학습시키는 데 도시 하나가 쓸 전력을 쓰고 매일 돌아가는 추론 비용은 그보다 더 크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곳마다 전력망이 비명을 지르는 이유다. 그래서 해답이 다시 원자력으로 돌아오는 역설이 생긴다. 태양광과 풍력만으로는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데이터센터의 기본 전력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형모듈원전, SMR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크고 비싸고 10년 걸리는 원전이 아니라 작게 찍어내듯 만들어서 데이터센터 옆에 붙이는 원전. 이제 국가 경쟁력은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느냐보다 누가 더 싸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대고 그 열을 식히느냐라는 아주 원초적인 인프라 싸움이 됐다. 전기는 새로운 석유이고 냉각은 새로운 경쟁력이다. 액체 냉각을 누가 먼저 제대로 하느냐가 데이터센터 임대료를 결정한다. 그래서 요즘 빅테크들이 원전 회사에 직접 투자하고 전력 회사와 20년 계약을 맺는 것이다.
마지막 퍼즐은 휴머노이드다. 테슬라 옵티머스만 있는 게 아니다. Figure나 Agility 같은 회사들이 인간형 로봇을 물류 창고와 자동차 공장에 넣기 시작했다. 왜 하필 지금이냐면 세 가지가 동시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모터와 액추에이터가 싸졌고 배터리가 좋아졌고 AI가 눈과 언어를 이해하게 됐다. 예전 로봇은 정해진 동작만 반복했지만 이제는 보고 듣고 판단해서 움직인다. 언어-시각-행동이 연결된 모델이 나오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뇌가 몸을 얻는 순간 제조업의 방정식은 인건비 절감을 넘어 무인화로 넘어간다. 여기서부터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계약의 문제다. 로봇이 사람보다 싸고 불평하지 않는 순간 사람은 무슨 일을 해야 하냐는 질문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지인이 그런 말을 하더라. 이제는 사람을 뽑는 것보다 로봇 한 대 들이는 게 계산이 더 쉽다고.
4. 사회, 공통의 바닥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
통합의 힘은 약해지고 각자의 절박함만 남았다. 그래서 갈등이 더 뾰족해진다. 예전에는 그래도 같은 뉴스를 보고 싸웠는데 이제는 아예 다른 뉴스를 보고 싸운다.
의료 갈등을 단순히 의대 증원 몇 명으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이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통제권과 전문직의 자율성이라는 두 개의 큰 원칙이 정면으로 부딪힌 사건이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위해 더 뽑아야 한다고 하고 의료계는 질이 무너진다고 맞선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사이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이 본다. 응급실 뺑이라는 말이 일상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더 오래 가는 건 후유증이다. 한번 깨진 신뢰는 증원 숫자가 봉합된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는다. 의사를 예비 범죄자 취급한 경험과 국가를 적으로 규정한 경험은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는다. 시스템의 공백보다 마음의 공백이 더 오래 간다. 이건 1, 2년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10년, 20년 갈 문제다.
인구 문제는 이제 현상이 아니라 수학이다. 합계출산율 0.7명대라는 숫자는 그냥 낮은 숫자가 아니라 나라의 설계 자체를 다시 해야 한다는 신호다. 아기가 안 태어나니까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생산가능인구가 줄니까 잠재성장률이 0%대로 내려앉고 연금이라는 저수지가 마른다. 젊은 세대는 어차피 나중에 못 받는다는 생각에 희망을 잃고 노년층은 생존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요구한다. 서로 미워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같은 파이가 작아지니까 싸우는 거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공허하다. 청년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갈등을 증폭시키는 게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은 친절하다. 당신이 좋아할 것만 보여준다. 문제는 그 친절이 공통의 사실이라는 바닥을 없애버렸다는 데 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전혀 다른 영화를 본 사람들처럼 싸운다. 정치적 극단화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서로 다른 현실에서 살기 때문에 합의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민주주의는 최소한 같은 사실을 보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그 전제가 사라졌다. 이건 의견 차이가 아니라 운영체제의 버그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은 토론이 안 된다. 토론은 같은 테이블에서 하는 건데 아예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5. 보안 심층, 이제는 뚫리지 않는 성벽이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일어서는가의 문제
보안은 이제 성벽을 높게 쌓는 싸움이 아니다. 뚫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전제로 얼마나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느냐의 싸움이다. 그래서 요즘은 복원력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완벽한 방어는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장 영리한 공격은 직접 치는 게 아니라 네가 믿고 쓰는 걸 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공급망 공격이 그렇다. 타깃을 직접 공격하는 건 하수다. 그 타깃이 무조건 믿고 쓰는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 서버나 개발 환경을 친다. 개발자가 쓰는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나 CI/CD 파이프라인 같은 곳에 몰래 코드를 심어놓는다. 그러면 사용자들은 정식 업데이트라며 스스로 악성 코드를 깔아준다. 백신도 잡지 못한다. 도장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한번 성공하면 수만 개 기업을 동시에 감염시킬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보안에서 중요한 질문은 무슨 소프트웨어를 쓰느냐가 아니라 그 소프트웨어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왔느냐가 됐다. 자재 명세서를 따지는 SBOM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내가 쓰는 프로그램이 어디서 왔는지 영수증을 확인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생성형 AI가 공격자의 손에 들어갔을 때 생기는 일이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딥페이크다. 목소리 복제는 기본이고 이제는 실시간 영상 통화까지 흉내 낸다. CEO가 영상 통화로 CFO에게 송금하라고 지시하는 식이다. 얼마 전 해외에서 실제로 수천만 달러가 이런 식으로 빠져나간 사건도 있었다. 공격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신뢰 자체다. 다른 하나는 취약점 탐색이다. 예전에는 사람이 코드 한 줄 한 줄을 눈으로 보면서 구멍을 찾았다면 이제는 AI가 수십만 줄을 순식간에 훑어서 구멍을 찾고 익스플로잇 코드까지 짜준다. 공격 속도가 사람 대응 속도를 넘어서는 지점이 왔다. 마지막 하나는 맞춤형 피싱이다. LLM이 당신의 링크드인과 논문, 발표 자료를 다 읽고 당신만 혹할 만한 메일을 쓴다. 예전처럼 어설픈 영어 피싱은 의심하라는 수칙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 문법도 완벽하고 맥락도 완벽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랜섬웨어의 진화다. 파일 잠그고 돈 달라는 시대는 끝났다. 요즘은 다중 협박이다. 먼저 데이터를 몰래 빼돌리고 그 다음 암호화해서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돈 안 주면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고 동시에 당신의 고객사와 파트너사에 직접 메일을 보내서 압박하고 마지막으로 DDoS까지 곁들인다. 기술 공격이 아니라 심리전이다. 여기에 RaaS라는 비즈니스 모델까지 붙었다. 개발자가 플랫폼을 만들고 기술 없는 범죄자들이 구독료를 내고 빌려 쓰는 구조다. 마치 포토샵을 구독해서 쓰듯이 랜섬웨어를 구독해서 쓴다. 진입장벽이 사라지니 공격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네 번째는 OT와 IoT 영역이다. 전력망이나 수도, 가스, 스마트 팩토리를 제어하는 설비들이 인터넷에 연결되면서 생긴 문제다. 우리는 에어갭이라는 물리적 분리를 믿었지만 이미 뚫렸다. USB 하나, 유지보수 업체 노트북 하나, 공급망 공격 하나로 뚫린다. 더 큰 문제는 오래된 설비다. 공장의 PLC나 발전소 제어 장비는 20년, 30년 전에 만든 것이라 패치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거기에 최신 네트워크가 붙으니 국가 기반 시설 전체가 한번에 마비될 수 있는 비대칭적인 약점이 생겼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런 OT 공격 때문에 도시 전체의 수도가 멈춘 적도 있다.
그래서 결국 답은 하나다. 절대 안 뚫리는 성벽은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무도 믿지 말고 항상 검증하라는 제로 트러스트, 네트워크를 잘게 쪼개서 한 곳이 뚫려도 옆으로 못 퍼지게 가두는 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 그리고 수정 불가능한 곳에 백업을 두고 실제로 복구되는지 주기적으로 훈련하는 것. 거창한 기술보다 이런 기본이 결국 살아남는 법이다. 백업은 있는데 복구가 안 되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따로 보면 그냥 뉴스다. 같이 보면 하나의 흐름이다. 정치에서는 진영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고 경제에서는 부채가 뒤로 밀리면서 시간을 벌고 기술에서는 사람의 일을 대체할 준비를 마쳤고 사회에서는 같은 사실을 공유한다는 믿음이 사라졌다. 이 네 개가 따로 터지는 게 아니라 같이 터지고 있다. 그래서 더 피로하고 더 어지럽다.
앞으로 몇 년은 이 흐름이 어떻게 터지고 어떻게 다시 짜이는지를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 흐름을 읽는 사람이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대다. 뉴스를 하나씩 소비하는 대신 판 전체를 보는 습관, 그게 지금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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